Dossier Acta Litt&Arts : Épreuves de l'étranger
Traduire Gérard Macé : Prose
Texte intégral
Traduction Lee So-yeon – Rétrotraduction Lee Tae-yeon & Aline Marchand
Traduction : Lee So-yeon
가까운 아프리카
콘래드가 본 '암흑의 핵심',
우리 대다수의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침투할 수 없던 시절을 거친 뒤에도 어둠과 신비의 땅으로 여겨지며, 완전히 잊히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문명사의 변방에 머물러 있다. 사실 아프리카는 질병과 참사, 일견 기묘한 듯한 풍습 탓에 다른 대륙을 돋보이게 하는 구실을 할 뿐이다. 중세가 활기차고 다색이었던 만큼 이곳의 현실도 찬란하고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중세처럼 암울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더욱 심각하게도 아프리카는 기록된 적이 없기에 역사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나는 고대로부터 홍해를 통해 아라비아반도에서 유래한 문자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에티오피아로 먼저 갔다. 4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에티오피아는 로마에 그 무엇도 빚지지 않았으며, 구약에 충실하면서도 유대교를 부정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자율적인 이곳의 역사는 알렉산드리아를 매개로 하여 우리의 눈과 정신을 즐겁게 해주는 채색 필사본과 교회의 성화들 덕에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이 필사본은 서구의 라틴어처럼 사어에서 제례의 언어가 된 그으즈어로 쓰였다.
그러나 이때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왜 이 문자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로부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 전파되지 않았을까?
간혹 우리는 대로와 교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 지역에, 인구도 적고 위대한 발명품도 도달하지 않은 이 대륙에 문자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속단한다. 이는 인구이동을 논외로 하더라도 사헬 경계가 아랍 세계와 접촉하고 있었고, 노예무역에 훨씬 앞서 노예와 상품을 교환했던 대상들이 코란을 가져왔음을 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인도양을 통해 조개류 형태의 화폐(저 유명한 카우리cauris 화폐)가 전해지며 아시아 자체가 간혹 뜻밖의 영향을 끼쳤음을 망각하는 것이다. 1730년 스넬그라브(Snelgrave)라는 한 여행자는 아프리카인들 앞에서, 심지어 그들의 요청으로 글을 쓰던 말레이시아인들을 만났다고 전한다. 토착민들은 이 필사본을 부적으로 삼았고, 행운의 상징이나 권력의 표식으로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같은 세기말, 탐험가 먼고 파크(Mungo Park)는 물에 용해된 문자가 마법의 음료가 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100년 뒤, 카메룬 서부에서는 술탄 은조야(Njoya)가 문자를 발명한 뒤 곧바로 활자를 물속에 흩어놓고 지워지지도 않은 채로 자기 신하들에게 마시게 한다. 시공상 괴리가 있지만 너무나 유사한 이 두 일화는, 우리 역시 경험한 문자와 마법의 관계를 입증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사용된 라틴어나 약제사들의 희랍어는 논외로 하더라도, 훗날 샹폴리옹(Champollion)이 잘못된 신비를 불식시키기 전까지 상형문자를 대상으로 한 허황된 해석들 - 하늘의 명령을 드러내는 신성한 활자라든가 사라진 종교의 계시 운운 - 을 상기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문자의 부재는 전적으로 어떤 선택에 기인하지는 않더라도 인류 전체와 관련되기에 우리의 주의를 일깨울 만한 매우 복합적인 현상이다. 고대의 산스크리트어나 기원후 8세기까지의 일본어도 비문자 언어였음을 상기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또한 문자 없는 언어들은 오늘날에도 허다하다.
문자의 채택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해 가르쳐주는 주요한 인류학적 사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민족중심론에 자족하지도 말고 인류의 진보에 대한 막연하고도 단선적인 관점도 버려야 한다. 이에 대해 바르트는 아주 정확히 "우리 중 다수는 아직도 '볼테르 이전의' 사고방식을 지녔다"고 말한 바 있다.
문자와 마법의 관계는 잔존하고, 우리는 그 관계가 소멸될까 두려워한다. 교육을 통해 그것이 기호와의 관계로 변화된 아프리카에서도 우리에게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 그 어떤 종교적 입문과 비의가 여전히 남아 있다. 말을 우선시하는 이유가 우리가 말을 거는 대상을 선택하기 위해서라면, 글로 쓴 문서는 만인의 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말을 통해서는 동류 인간들 사이에 머물 수 있지만, 문자를 통해서는 법률을 멀리 전달하고, 제국의 국경을 뒤로 밀어내면서도 그 몰락을 재촉할 수 있다.
저항자와 밀항자, 도망자들은 자신의 신상에 해를 끼칠지도 모를 문서를 삼켜버릴 만큼 주도면밀했다. 머릿속에 외운 것은 보이지 않고 침해할 수 없기에 숱한 죄수들과 시인들은 그들을 살려줄, 혹은 그들이 죽은 뒤에도 살아남을 것을 자신의 기억에 (혹은 지인들의 기억에) 맡긴 것이다.
어떤 선의의 손길에 인도된 것일까, 우연히도 피에르 베탕쿠르(Pierre Bettencourt)의 우화가 내 눈에 들어왔다.
"물병에 내 아내의 유언을 담았다. 검은 글자들은 이내 녹아버렸고, 물은 진흙 빛이 되었다. 몇 년 뒤, 찬장에서 다시 찾아보니 물은 모조리 증발했고, 병 밑바닥에 글자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베탕쿠르는 술탄 은조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고, 술탄 역시 베탕쿠르의 존재를 예견하지 못했지만, 이와 같은 상상력 덕분에라도 우리는 실제 여행을 통해서만큼이나 아프리카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Rétrotraduction : Lee Tae-yeon & Aline Marchand
PROCHE AFRIQUE
« Le cœur des ténèbres » selon Conrad,
« Le continent noir » pour la plupart d’entre nous.
Jadis terre impénétrable, l’Afrique évoque encore une contrée d’ombres et de mystères ; sans pour autant sombrer dans l’oubli, elle est cantonnée aux marges de l’histoire des civilisations. En raison d’épidémies, de fléaux et de mœurs semblant étranges, l’Afrique se réduit au rôle de faire-valoir des autres continents. Tel le Moyen Âge, époque dynamique et multicolore, la réalité africaine est pourtant splendide et chatoyante, bien loin de l’obscurantisme qu’on lui prête également.
Pire encore, l’Afrique n’a laissé aucune trace écrite ; elle semble sans histoire. C’est pour cette raison que je me rendis, dans un premier temps, en Éthiopie qui avait probablement accueilli, dès l’Antiquité, l’écriture provenant de la péninsule arabique en passant par la mer Rouge. L’Éthiopie avait introduit le christianisme au IVe siècle, ne devait rien à Rome et, sans nier le judaïsme, elle restait fidèle à l’Ancien Testament. L’histoire de ce lieu, parfaitement autonome, est conservée jusqu’à nos jours, grâce à Alexandrie, à travers des manuscrits enluminés et des icônes religieuses qui font le bonheur des yeux et de l’esprit. Ces textes étaient écrits en guèze, une langue morte devenue langue liturgique comme le latin.
Mais, une question surgit alors. Pourquoi cette écriture ne s’est-elle pas diffusée depuis l’Égypte et l’Éthiopie jusqu’à l’Afrique subsaharienne ?
Nous pourrions conclure hâtivement que l’écriture ne se serait pas répandue dans ces régions éloignées des grand-routes et des échanges, dans ce continent peu peuplé, déserté aussi par les grandes inventions. Outre les mouvements de population, nous oublions pourtant que la frontière du Sahel communiquait avec le monde arabe et que les caravanes, qui échangeaient des êtres humains contre des biens de consommation bien avant la traite des esclaves, avaient apporté le Coran.
Nous oublions également que les monnaies coquillages (ces fameux cauris) étaient transmises par l’océan Indien et que l’influence de l’Asie était même souvent étonnante. En 1730, un voyageur, Snelgrave, rapporta dans son journal qu’il avait rencontré un Malaisien qui écrivait devant les Africains et, qui plus est, à leur demande. Les aborigènes tenaient ce manuscrit pour un talisman et le portaient en signe de bonne fortune ou de pouvoir.
Par ailleurs, à la fin du XVIIIe siècle, l’explorateur Mungo Park assiste à une scène où les caractères, une fois dissous dans l’eau, transforment celle-ci en boisson magique. Cent ans plus tard, à l’ouest du Cameroun, juste après l’invention de l’écriture Bamoun, le sultan Njoya disperse les lettres dans l’eau pour les faire boire à ses sujets, avant qu’elles ne s’effacent. Même si elles sont éloignées dans l’espace et le temps, ces deux anecdotes montrent pareillement le lien qu’entretient l’écriture avec la magie, comme nous autres Occidentaux en avons aussi fait l’expérience. Sans parler du latin utilisé dans les églises, du grec des apothicaires, ou encore de Champollion qui finit par dissiper un mystère pétri d’erreurs, rappelons simplement les interprétations invraisemblables qu’ont suscitées les hiéroglyphes – des caractères sacrés dévoilant l’ordre du ciel ou révélant la religion disparue, entre autres.
L’absence d’écriture, bien qu’elle ne soit pas entièrement volontaire, est un phénomène profondément complexe qui peut attirer notre attention, en ce que cela engage toute l’humanité. N’oublions pas que le sanscrit de l’Antiquité et le japonais jusqu’au VIIIe siècle après Jésus-Christ étaient des langues parlées. Aujourd’hui même, il existe encore de nombreuses langues non écrites.
Certes, il est difficile d’expliquer le recours à l’écriture, mais cela est capital d’un point de vue anthropologique pour comprendre notre propre histoire. Il faut pour cela résister à l’ethnocentrisme et refuser une vision confuse et unilinéaire quant au progrès humain. Barthes le formule en ces termes : « Nous sommes nombreux à penser comme "avant Voltaire" ».
Le lien entre l’écriture et la magie subsiste mais jusqu’à quand ? En Afrique même, l’éducation met désormais à l’honneur le signe, bien que des pratiques initiatiques et ésotériques qui ne nous sont pas complètement inconnues survivent encore. Si nous pouvons choisir notre interlocuteur à l’oral, le document écrit, lui, peut tomber aux mains de tous. La parole borne les lois à un petit cercle de semblables, alors que l’écriture les diffuse bien au-delà et favorise l’expansion des empires comme leur effondrement.
Les dissidents, les clandestins et les fugitifs étaient si prudents qu’ils étaient prêts à avaler tout document susceptible de mettre leur vie en danger. Comme un secret tapi en son cœur reste un bien inaliénable, un grand nombre de prisonniers et de poètes confiaient à leur mémoire (ou à celle de leurs proches) ce qui pouvait les sauver ou bien survivre à leur mort.
Par je ne sais quel heureux hasard, je tombai sur la fable de Pierre Bettencourt :
« J’ai mis le testament de ma femme dans une carafe. Les caractères noirs ont tout de suite fondu et l’eau a pris une teinte boueuse. Quelques années plus tard, lorsque j’ai retrouvé la carafe, l’eau s’était complètement évaporée et les caractères au fond ont ressuscité intacts. »
Bettencourt n’entendit jamais parler du sultan Njoya, qui lui-même n’avait pas pressenti son existence, mais grâce au pouvoir de l’imagination nous pouvons approcher de l’Afrique comme si nous nous y rendions en voyage.
Traduction Moon So-young – Rétrotraduction Cha Hyang-mi & Thierry Laplanche
Traduction : Moon So-young
가까운 아프리카
콘래드에 따르면, 어둠의 심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검은 대륙.
한때 진입이 불가능했던 아프리카는 어둡고 신비로운 곳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문명의 역사에서 행여 잊혀지지 않을 때는 늘 한 켠으로 밀려나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질병, 재해, 확연히 낯선 관습으로 인해 들러리 역할을 하는 데 지나지 않으며, 중세가 생기 넘치고 다채로운 시대였던 것처럼, 실제로는 화려하고 찬란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시대처럼 암울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프리카에서는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가 없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내가 일단 에티오피아로 떠난 건 그런 연유에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홍해를 거쳐서 전해진 문자를 고대시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세기 때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나 이와 관련해서는 로마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으며, 구약성서를 신봉하고 있는 에티오피아는 유태교의 그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았다. 더할 나위 없이 독자적인 이 나라의 역사는 알렉산드리아와의 관계하에 오늘 날까지 이어져왔는데, 이는 마음만큼이나 눈이 즐거워지는 교회의 그림과 채색 필사본 덕분이다. 서양의 라틴어처럼 제례어가 되어버린 사어(死語)인 그으즈어(語)로 된 필사본 말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문자가 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는 전파되지 않았던 것일까?
사람들은 대로와 교역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이 고장, 인구가 적고 위대한 발명품들도 들어오지 않았던 이 대륙에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종종, 조금은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곤 한다. 이는 집단 이주는 차치하더라도, 사헬 강에서는 아랍 세계와의 교류가 있었으며, 노예교역 훨씬 이전에 물품과 노예를 맞바꾸던 대상(隊商)들이 코란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또한 조개 형태의 화폐(유명한 자패 紫貝)가 유입된 인도양을 통해서, 아시아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1730년 스넬그라브라는 여행자가 사헬 지역에서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만난다면서 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 앞에서 글자를 쓰며, 심지어 써보라는 대로 쓰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육필 원고를 원주민들은 행운의 상징이나 권력의 표시로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부적으로 사용했다. 동세기 말에 문고 박은 글자가 녹아 마법의 음료가 되는 광경을 목격한다. 100년이 지난 후, 카메룬의 서쪽에서 은조야 술탄은 신하들에게 자신이 발명한 문자로 쓴 활자를 물에 풀어 녹여서 마시게 한다. 굉장히 유사한 이 두 개의 일화는, 공간상으로나 시간상으로 거리가 있지만,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문자와의 신비로운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라틴어나 약사들이 쓰는 그리스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샹폴리옹이 잘못된 미스터리를 풀어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늘의 뜻이나 사라진 종교의 계시를 적어 놓은 신성한 글자인 상형문자에 대해 얼토당토않은 해석들이 있었음을 상기해보라.
문자의 부재가 온전히 선택의 문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전 인류와 관련된 것이므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복잡성을 갖는 현상이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나 서기 8세기의 일본어가 문자 없는 언어였음을 상기해보라. 현재도 문자가 없는 언어가 더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설명하기 쉽지 않은 문자의 채용은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중요한 인류학적 사실이다. 단, 자민족 중심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뭔지는 모를 진보의 단선적 시각에서 벗어난다면 말이다. 우리 중 상당수의 정신상태는 여전히 “볼테르 시대 이전”에 머물러 있다고 바르트가 아주 정확히 말했듯이, 우리가 여러 시대를 동시에 살고 있는 한 이는 자명한 사실이다.
문자와의 마법 같은 관계는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관계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교육으로 인해 기호와의 관계가 변해버린 아프리카에는 우리에게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 교리의 입문이나 신비 같은 것이 남아 있다. 굳이 말을 선호하는 것은 말할 상대를 선택하기 위함인 반면, 글로 쓴 문서는 누구든지 수중에 넣을 수 있다. 말은 동족끼리만 주고받는 것이지만, 문자는 멀리까지 법을 전하고 제국의 국경도 넓힐 수 있으며 그 쇠락을 재촉할 수도 있다.
저항하는 자들, 범죄자들, 쫓기는 자들은 자신을 위태롭게 만들지도 모르는 문서를 삼켜버리는 용의주도함을 보이기도 했다. 암기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빼앗을 수 없으니, 얼마나 많은 죄수와 시인들이 그들을 살게 하거나 살아남게 할 것을 자신의 기억력(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기억력)에 의존했던가.
마치 너그러운 손길이 이끌 듯 우연히 피에르 베탕쿠르의 다음과 같은 우화가 눈에 띠었다.
“물병에다 아내의 마지막 말을 담아두었답니다. 검은 글자들은 곧 녹아버렸고 물은 진흙색이 되었죠. 몇 년이 지나 벽장에서 그 병을 다시 찾아냈을 때는 물이 다 증발해버린 상태였는데, 병 밑에 글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답니다.”
베탕쿠르는 은조야 술탄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고 은조야는 베탕쿠르의 존재를 예상치도 못했지만, 이런 공통된 상상의 세계 덕분에 여행을 통해서만큼이나 아프리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Rétrotraduction : Cha Hyang-mi & Thierry Laplanche
PROCHE AFRIQUE
Selon Conrad, elle est le cœur des ténèbres.
Pour la plupart des gens, elle est le continent noir.
Jadis inaccessible, l’Afrique passe pour une terre sombre et mystérieuse. Quand, par chance, elle n’est pas oubliée dans l’histoire des civilisations, elle se trouve toujours à la marge. En toute honnêteté, si l’Afrique reste cantonnée dans un rôle de figuration, c’est par ses maladies, ses catastrophes naturelles et ses coutumes résolument étranges et, bien qu’elle ait été un continent splendide et glorieux tout comme le Moyen Âge une époque dynamique et multiple, on lui attribue un caractère sinistre à l’image de cette période.
Comble de malheur, parce qu’elle ne l’a pas consigné dans des documents écrits, l’Afrique est considérée comme une terre sans histoire. Ce sont les raisons qui m’ont amené à partir pour l’Éthiopie. Il est connu que l’on y utilise depuis l’Antiquité l’écriture transmise depuis la péninsule Arabique en passant par la mer Rouge. Christianisé au IVe siècle, ce pays est pourtant resté en dehors de l’influence de Rome ; partisan de l’Ancien Testament, il ne nie rien du judaïsme. Son histoire tout à fait indépendante s’est développée jusqu’à aujourd’hui en relation avec Alexandrie grâce aux peintures et aux manuscrits enluminés de l’église qui flattent aussi bien les yeux que le cœur – des manuscrits rédigés en guèze, langue morte devenue langue liturgique au même titre que le latin en Occident.
Une question se présente alors. Pourquoi l’écriture qui a émergé en Égypte et en Éthiopie ne s’est-elle pas propagée au sud du Sahara ?
On suppose souvent – de manière un peu trop hâtive – qu’il n’existe pas d’écriture dans ces contrées éloignées des grands axes de circulation et des échanges commerciaux, dans ce continent faiblement peuplé et hors d’atteinte des grandes inventions. C’est toutefois oublier, sans même évoquer les migrations de masse, les échanges avec le monde arabe autour du fleuve (sic) Sahel et l’introduction, bien avant la traite négrière, du Coran par les caravanes qui troquaient des biens contre des esclaves. C’est aussi faire l’impasse sur l’influence exercée de manière inattendue par l’Asie via l’océan Indien où l’on introduisit une monnaie sous forme de coquillages, les fameux « cauris ». En 1730, un voyageur du nom de Snelgrave raconte avoir rencontré, dans la région du Sahel, des Malaisiens qui écrivent sous les yeux des Africains, et qui écrivent même ce que leur demandent ces derniers. Ces inscriptions manuscrites deviennent des amulettes pour les autochtones qui les portent sur eux comme symbole de bonne fortune ou comme signe de pouvoir. A la fin du siècle, Park Moon-go assiste à une scène où des caractères se dissolvent pour devenir une boisson magique. Cent ans plus tard, dans l’ouest du Cameroun, le sultan Njoya fait boire à ses sujets de l’eau dans laquelle il a dissous des caractères issus de l’écriture dont il est l’inventeur. Ces deux épisodes semblables, en dépit de la distance géographique et temporelle qui les sépare, témoignent d’une relation mystique avec l’écriture, ce dont nous sommes déjà familiers. Rappelez-vous, sans parler du latin de l’Église ou du grec des apothicaires, les interprétations fantaisistes sur les hiéroglyphes divins véhiculant la parole divine ou les révélations d’une religion disparue, avant que Champollion ne lève le voile sur ces faux mystères.
L’absence d’écriture, si elle n’est pas entièrement affaire de choix, est un phénomène assez complexe pour susciter notre curiosité, d’autant qu’elle se rapporte à l’ensemble de l’humanité. Souvenez-vous que le sanskrit de l’Antiquité ou le japonais du VIIIe siècle de notre ère n’avaient pas d’écriture, et que les langues sans écriture restent encore majoritaires de nos jours. L’adoption d’une écriture, difficile à expliquer, est un fait anthropologique majeur qui nous en apprend sur notre propre histoire, à condition de ne pas nous complaire dans l’ethnocentrisme et de sortir de la vision unilinéaire de « progrès », notion que je ne saurais définir. C’est une évidence dans la mesure où nous vivons plusieurs époques à la fois, et où la majorité d’entre nous, comme le disait très justement Barthes, vit encore dans une mentalité pré-voltairienne.
Notre relation magique à l’écriture persiste, et nous craignons que ce lien ne se rompe. En Afrique, où le rapport aux signes s’est transformé avec l’éducation, il subsiste quelque chose d’initiatique ou de mystique qui ne nous est pas tout à fait étranger. Si l’on préfère l’oral pour le choix de son interlocuteur, l’écrit peut lui tomber entre n’importe quelles mains. Si la parole s’échange au sein d’une même ethnie, l’écriture permet quant à elle de répandre la loi très loin, d’étendre les frontières d’un empire ou de provoquer sa chute.
Des résistants, des criminels, des fugitifs ont fait preuve de prudence en avalant des documents qui auraient pu les mettre en danger. Ce que l’on garde en tête étant invisible et inaliénable, combien de prisonniers et de poètes ont dû leur vie ou leur survie à leur mémoire (ou à celle de leurs proches) !
Comme guidé par une main généreuse, mon regard s’est posé par hasard sur cette fable de Pierre Bettencourt :
« J’ai placé les dernières paroles de ma femme dans une bouteille d’eau. Les caractères noirs se sont vite dissous et l’eau s’est troublée. Quelques années plus tard, lorsque j’ai retrouvé la bouteille dans le placard, l’eau s’était complètement évaporée. Au fond de la bouteille restaient les caractères intacts. »
Tout comme Bettencourt n’avait jamais entendu parler du sultan Njoya, ce dernier ne pouvait soupçonner l’existence de Bettencourt. Pourtant, grâce à cet imaginaire commun, il est possible, tout autant que par le voyage, de se rapprocher de l’Afrique.
Pour citer ce document
Quelques mots à propos de : Lee So-yeon
Traduction français-coréen
Du même auteur
Quelques mots à propos de : Lee Tae-yeon
Rétrotraduction coréen-français
Du même auteur
Quelques mots à propos de : Aline Marchand
Rétrotraduction coréen-français
Du même auteur
Quelques mots à propos de : Moon So-young
Traduction français-coréen
Du même auteur
Quelques mots à propos de : Cha Hyang-mi
Rétrotraduction coréen-français
Du même auteur
Quelques mots à propos de : Thierry Laplanche
Rétrotraduction coréen-français